가들이 2022. 6. 23. 06:38

베네치아 나홀로 여행 후기

베네치아 나홀로 여행 후기
베네치아 나홀로 여행 후기

내가 본 베네치아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. 굳이 다른 명소를 찾아가 입장료를 지불하고 그러지 않아도. 베네치아 본섬과 무라노, 부라노 섬 정도만 들러서 한 바퀴 걷고 나와도 아쉬움이 없을 정도랄까.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이, 딱 맞는 곳이었다.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앞으로 50년 뒤면 베네치아는 물에 잠겨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이기 힘들 거라는데, 일찍 다녀 온 난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. 물론 현재 당국에서 조치를 취하는 중이라곤 하지만. 이탈리아의 겨울은 우기인만큼, 날씨가 참 꾸물꾸물하고 간간히 이슬비가 오락가락했지만 동양인, 서양인 여행객 모두가 뷰티풀을 연발하고도 남을 정도였다. 전에도 말했지만, 기차표를 끊을 때에는 역을 잘 봐야 한다. 우리도 청량리역이 지하철역도 있고 기차역도 있듯, 여기도 마찬가지다. 흔히 여행객이 생각하는 베네치아로 가려면 'Venezia S. Lucia(베네치아 산타루치아)' 로 가야 한다. Venezia Mestre(베네치아 메스트레)역도 있는데, 여긴 본섬 들어가기 바로 전 역이다. 실수로 베네치아면 다 같은 걸로 알고 기차표를 끊거나, 숙소를 메스트레 쪽으로 잡는 경우가 있는데 전혀 '다른' 역이라는 것! 명심하자. 기차역에서 내려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웬 할아부지께서 나에게 한국인이냐고 묻는다. 엇, 어떻게 알았지? 호텔 크루라고 적힌 이름표를 차고 있는 걸로 보아 현지인임이 분명한 할아부지셨는데, 보면 다 안다나. 한국인인 나 조차도 한, 중, 일 민족 구분이 잘 안 될때가 많던데 대단하신 듯. 간혹 이런 분들이 있다- 의외로 우리나라에 대해 잘 아는 분들. 이런 분들의 특징은 꼭, 저녁 같이 먹자로 끝이 난다.

숙소 방문

할아버지 작업 하시는 건 좋은데요, 음, 딱봐도 저랑 할아부지 나이 차가 반세기는 나 보이는데요.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영어 미숙으로 노땡큐라고 하고 도망쳤다. 근데 또 서양 사람들 특징이 싫다고 하면 쿨하게 자기 가던 길 간다. 우리나라 같았으면 굉장히 귀찮게 번호 달라, 애인있어도 상관없다 등등 짜증나게 구는데 말이다. 혼자 여행하시는 여자분들은 알아두세요. 외모가 예쁘고 안 예쁘고를 떠나 이런 일 다반사입니다. 한국에 돌아와서 여행 좀 많이 다닌 친구에게 이 얘길 해줬더니, 그 친구 하는 말이 "그래도 젊게 사는 거니까 오히려 더 멋져보이던데?" 라고 말해서 날 더 당황시켰다. 사상이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구나 싶어서. 좌우지간, 예약해 둔 숙소를 찾아서 베네치아 본섬은 물가가 비싸서 호스텔이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았다. 저렴하고 식사 제공까지 되는 숙소를 찾는다면 본섬 밖에 있는 숙소를 가는 것도 괜찮다. 내가 간 곳은 'Casa Gerotto Calderan'. 밖에 네온사인에는 그냥 호텔이라고 적혀 있어서 부르주아라고 놀림받았던 기억이 난다. 가는 방법은 역에서 왼쪽으로 나와 쭉 들어가면 된다. 숙소가 보일 때까지 가면 된다. 캐리어만 던져놓고 근처 상점 한 바퀴 돌아봤다. 역시 베네치아의 명물은 뭐니뭐니해도 '가면'이다. 매년 2월에 가면축제를 한다는데, 재밌을 것 같다! 가면을 파는 상점 대부분은 사진을 못 찍게 해서 사진이 없는데, 가격과 디자인이 정말 다양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. 어렸을 적 미술시간에 석고판으로 가면 만들던 기억이 났는데 정말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았다. 장식품으로 집에 걸어놓으면 멋들어질 것 같지만, 가뜩이나 작은 가방 자리 차지하므로 패스-. 그래도 하나쯤 기념으로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. 그리고 점심 먹으러, 난 뭐든 혼자 잘 하는 편인데 아직까지도 밥 혼자 먹는 건 참 뻘쭘하다. 그것도 타지에서. 좋은 레스토랑에서 칼질 좀 하고 싶어도 어쩐지 이런 건 혼자 먹기가 좀 그래! 그래서 파스타 하나 시켜서 먹었다. 까르보나라 되냐고 물어보니까 된다고. 여태까지 갔던 집들은 다 그게 뭐냐는 반응이어서 내가 더 당황스러웠는데, 게다가 여기 웨이터가 개콘에 김원효?랑 완전 닮아서 혼자 킥킥거렸던 기억이 난다.

수상버스 후기

점심을 잘 해결하고, 바포레토(수상버스) 타러 갔다. 베네치아의 주 교통수단은 이 바포레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, 그도 그럴것이 우선 섬이라 지하철이 다닐 수 없고, 작은 섬이라 골목골목이 매우 좁아 일반 버스가 다니기도 쉽지 않다. 곤돌라도 있긴 하지만, 그건 교통수단이라기 보다 여행객을 위한 거랄까. 난 미리 예약해 둔 12시간권이 있어서 이걸 들고 탔는데, 예약 안 하면 무지 비싸므로, 미리 끊어둘 것을 추천한다. 난 무라노 섬과 부라노 섬에 가기 위해 탑승권을 끊었는데 바포레토가 물 위를 다니는 버스라는 건 알겠어. 근데 이게 노선도 그렇고, 버스 번호도 많고, 은근히 복잡해 보인다. 천호동을 지나는 341번 버스가 있습니다. 이 버스는 천호동을 지나 잠실로 가는 행이 하나 있고, 반대로 잠실을 거쳐와 천호동을 지나 보훈병원으로 가는 방향이 있습니다. 두 가지는 방향만 다를 뿐이지 같은 버스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, 바포레토의 경우, A-B로 가는 건 60번, 역으로 B-A로 가는 건 61번, 이렇게 버스 번호를 아예 다르게 해서 방향을 몰라 잘못 타는 일을 막도록 해놨습니다. 즉, 내가 방향을 몰라도 번호만 제대로 알고 타면 된다. 좌우지간 난 버스를 타고, 곤돌라를 못 타니 이거라도 열심히 타면서 베네치아의 향을 느껴보겠어! 라고 생각한 지 10분 만에 곯아떨어졌다. 여행 후반부가 되니 대충 앉기만 하면 잠이 쏟아졌다. 이래놓고 밤엔 잠 못자서 뒤척거린다. 다행히 도착지에 대한 강한 열망 덕에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친 적은 없었다. 베네치아 본섬에서 무라노 섬, 부라노 섬의 거리가 꽤 멀다. 적어도 50분 정도 걸렸다. 무라노 섬은 유리 공예로 유명한 곳이다. 여기까지 왔으니 박물관에 가야해! 라는 투철한 사명에 불타 유리공예 박물관에 가봤는데 별 거 없었다. 그냥 섬 안의 상점들 눈으로 구경하는 게 훨씬 낫다. 학생 할인 되는 곳이니, 가는 분들은 참고하시고 원래 성인 6유로인데 할인받아 4유로 내고 입장했다.

부라노 섬 관광

부라노 섬은 레이스 공예와 형형색색의 칼라풀한 집으로 유명한데, 내가 간 시즌은 겨울(=휴가철)이라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. 칼라풀한 집만 카메라에 잘 담아서 지금 블로그 메인화면으로 아주 잘 쓰고 있다. 저 멀리, 석양에 곤돌라 연습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. 곤돌리에가 되기 위한 노력인가, 그러고 보니 곤돌리에가 되면 돈 꽤나 번다고 한다. 곤돌리에의 인원 수를 제한하고 있는 데다가 여러가지 까다로운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하고 시험도 봐야 해서 되기 쉽지 않다고 한다. 혹여 외부인이 곤돌리에가 되려면 몇억? 을 내야 한다고 들었는데, 그렇게 투자해도 막상 곤돌리에가 되면 투자한 거 회수하고도 남는다 한다. 곤돌라, 정말 타고 싶었지만, 같이 탈 만한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못 타고 돌아왔다. 베네치아에서도 한국인 꽤 많이 만났는데, 다들 별로 곤돌라에는 관심 없는건지 모르겠다. 어느덧 해가 지고 캄캄해져 주변이 굉장히 고요했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. 처음엔 음악소리인가 했는데, 그럴리가 없잖아?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뛰어갔더니 곤돌라를 탄 사람들이 있었고, 그 앞에서 곤돌리에가 노래하고 있었다. 곤돌라 탈 때에는 가격 흥정 및 노래 해줄건지 안 해줄건지 쇼부쳐야 한다는데, 그런 건 둘째 치고 뭔가 피로가 씻기는 듯한 노래소리였다. 왜 곤돌리에 되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. 계속 쫓아가다가 길이 막혀서 그냥 흘러가는 물과 노랫소리를 보고만 있었다.